美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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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이미영
2025.4.9 - 4.14
마루아트센터 신관 3층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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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서문]
부엌에서 그린 그림
탁탁탁. 보글보글. 취- 그리고 쓰윽슥.
엄마의 부엌은 익숙한 풍경 속 낯선 소리가 공존한다. 연신 바쁘게 도마 위를 오가는 칼날과 금세 허기가 돌게 하는 구수한 된장찌개, 곧 저녁 시간임을 알리는 압력밥솥의 알람과 채 마르지 않은 붓 한 필에 수줍은 분홍 속살을 내놓은 꽃 한 송이가 그려진 하얀 캔버스.
‘설마 고추장을 빨간 물감과 헷갈리시진 않겠지’ ‘상추에 초록 물감이 튀면 어떡하지?’ 나 혼자 엉뚱한 상상을 해 보며 엄마의 작업실을 바라본다.
근사한 작업실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고민하며 애쓴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엄마로써 아내로써 며느리로써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삶의 자리.
그 자리에서 엄마는 하얀 캔버스 위에 마음을 담는다.
엄마의 마음은 꽃이다. 한번은 엄마에게 왜 꽃을 그리시느냐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이유였다. “어릴 때부터 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어.”
활짝 피어 화사한 그 꽃과 트라우마의 조합이라니. 엄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엄마의 어린 시절, 엄마의 엄마는 5남매를 키우면서도 꽃에 대한 사랑이 지극정성이셨다. 비가 오면 꽃 화분을 몽땅 들어 처마 안으로 들여 놓으라 하시고 볕이 들면 다시 처마 밖 해가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내 놓으라 하셨다. 그 일은 오롯이 첫 째인 엄마의 몫이었다. 매일 매일 하기 싫은 일의 연속이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 지금 그 지극한 사랑이 외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 이어졌다. 아름답지만 밉고, 밉지만 사랑스러운.
엄마가 피운 꽃은 엄마의 삶을 닮았다. 모든 생물의 탄생이 그렇듯 추운 겨울과 소나기를 맞이하고 힘겹게 싹을 띄워 오랜 시간을 기다려 힘차게 피어오른 인생의 열매가 바로 그 꽃 한 송이이랴.
캔버스에 한 송이 또는 서너 송이 꽃으로 그려진 화면은 단색조 배경으로 실재와 거리가 먼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이 공간에서 엄마는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여백이 많은 배경은 여유를 주고, 엄마의 성품처럼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귀한 공간이 되어 준다.
추상표현 작업처럼 보이는 이 배경은 사실적 형상과 거리가 먼데 마치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모습으로 자유로워 보인다.
언제라도 배경에서 분리되어 활동할 것 만같은 꿈틀거림이 있다. 뿌리 없는 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엄마의 그림에선 은유의 상징으로 중요한 부분인 듯 보인다.
그렇게 하나하나 그림으로 피운 꽃들이 모여 작은 정원이 되었고 엄마는 정성스럽게 꽃을 가꾸며 인생을 돌아보며, 돌보며, 나아간다.
지난 주 시장에서 사온 프리지아 꽃이 작은 꽃병에 담겨 제 힘껏 봉우리를 터뜨렸다. 그 작고 강인한 것을 보며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의 정원에서는 꽃이 시들지 않는다.
작은 부엌 한 켠, 엄마의 작업실에서 움튼 그녀의 꽃은 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압력밥솥이 취- 하고 김을 낼 때 엄마의 부엌에서 본 희뿌연 꽃들이 생각나겠지
봄기운 가득 담아 활짝 핀 진달래를 보면 엄마의 부엌에서 만개했던 그 봄을 닮은 분홍 꽃망울이 생각나겠지
<전시기획_안진우>
